이두영 (크로스핏 제스트)
FIT
IS THE SHIT
LEE DOO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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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공부와 커리어를 뒤로한채 오로지 크로스핏 코치가 되기 위해 귀국한 한 청년은 꿈을 이뤄 '크로스핏 제스트'의 헤드코치가 됐습니다. 죽을 때까지 제스트의 문을 닫지 않겠다는 그를 만나 보았습니다.
어떻게 크로스핏을 시작하게 됐나요. 리복 미국 본사에서 일을 할 때 회사 내 CrossFit One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크로스핏을 시작했어요. 사실 당시에는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기보다 자유롭게 진행되는 수업 방식이었고 운동하고 각자 할 일하러 가는 식이다 보니 딱히 동기부여되거나 특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한국에 들어와 크로스핏 투혼을 다니면서 크로스핏에 푹 빠지게 됐어요. 한국 특유의 문화일 수도 있는데 크로스핏은 운동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 곳으로 느껴졌어요. 제게 있어서 크로스핏 박스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어요.
코치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해온 공부와 커리어를 다 포기하고 코치가 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어요. 사실 처음에는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그러나 저보다 잘 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고요. 이를 인정하는 순간, 저 자신보다 그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친구는 이런 케어를 받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친구는 이렇게 운동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나질 않았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뒤로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코치’로서의 삶을 살게 됐어요.
그렇게 제스트가 탄생했네요. 제스트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심오한 철학이라기 보다 운동을 하면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커뮤니티로 이끌고 싶어요. 직업, 나이, 가치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운동을 통해 다 같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소,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크로스핏을 좋아하게 됐던 모습 그대로 회원분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던데요! 우선 격주 토요일마다 On Ramp 수업을 진행해요. On Ramp 수업은 상대적으로 이론 수업에 가깝죠. 주로 '왜 이 운동을 해야 하고, 왜 이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동작은 어떤 힘을 필요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회원들과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져요. 사실 CrossFit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시간이 매우 부족하여 운동과 동작 자체에 대한 이론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본 수업을 통해 그 부분들을 메꿔나갈 수 있죠. 목요일은 Recovery Day로 지정했어요. 운동은 ‘휴식’이 제일 중요한데 간혹 오버트레이닝으로 부상을 당하는 회원들이 생겨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일주일의 하루를 공식 Recovery Day로 지정하여, 뭉친 근육을 풀거나 마사지, 약간의 밸런스 훈련 등을 위한 동작들을 위주로 진행해요. 이 날 몸의 근육통이나 불균형적인 요소들을 풀 수 있도록 회원들에게 꼭 참석하도록 권장하는 편입니다.
회원들의 반응이 좋을 것 같아요. 솔직히 반반이에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좀 더 많은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없앨 수는 없죠. Recovery Day 가 도입되면서 회원들의 부상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기 때문이에요. 코치들이 다른 수업과 달리 ‘선생님’의 모습으로 이론 수업을 이끌어가니 코치들에 대한 리스펙트도 생기고 회원들도 자연스럽게 운동에 대한 지식도 많이 깊어졌어요. 매년 Recovery Day 존속 여부에 대해 고민을 하곤 하는데 없앴다가 니즈가 생겨 다시 만드는 것보다 회원 중 한 명이라도 운동을 제대로 배워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제스트만의 대회가 있던데 설명해주세요. 크게 두 개의 행사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제스트 게임즈에요. 지금도 진행 중이긴 한데, 실제 크로스핏 오픈에 참여하여 상위에 랭크된 남자 회원 9명, 여자 회원 6명을 대상으로 결승전이 치러져요. 리저널 수준의 와드는 아니지만 코치스 본선 와드보다는 조금 더 높은 강도의 와드로 구성돼요. 대회를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회원들에게 꼭 추천하는 대회입니다. 두 번째는 제스트 서바이버입니다. 약 5주 정도 진행되고, 남자 회원 2명, 여자 회원 1명으로 구성된 팀이 3주간의 온라인 예선전을 거친 후 8팀이 본선에 오르게 돼요. 작년에도 100여 명의 회원이 참가했을 정도로 제스트의 가장 큰 행사라고 볼 수 있어요. 본인들 스스로 팀을 만들고 각자 레벨에 맞게 와드를 차차 수행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제스트는 특히 코치진과 수상경력이 화려해요. 살짝 자랑을 하자면 2013년 9월에 박스 오픈한 이후로 2017년까지 매년 리저널을 다녀왔어요. 5년 연속 리저널에 출전한 박스는 국내 유일하다고 확신해요. 사실 그렇다고 해서 대회에 나가 1등을 했거나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어요. 다만 대회에 출전을 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설사 예선전에 통과를 못하게 될지라도 무조건 참가하라고 부추기는 편이에요.
선수들은 어떤 훈련을 하고 있나요. 선수 시절에 난 '무조건 많이, 무겁게, 빨리’를 외치며 무식하게 훈련을 강행했다면, 이제는 선수들로 하여금 무조건 ‘스마트하게’ 운동하게끔 도와주고 있어요. 선수 시절에 체계적이지 않은 훈련으로 부상이 잦았기 때문에 이 친구들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도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필드에서 뛰어 봐야만 선수들에게 더 좋은 코치의 역할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게임즈를 가는 선수가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싶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작년 말 서초점이 닫았죠? 사실 1호점은 ‘도전,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의 첫 스텝’을, 2호점은 더 좋은 수업 환경을 위한 ‘공간 확장’의 의미를 가졌고 3호점인 서초점은 크로스핏 제스트의 모델하우스 느낌의 완전체와 같았어요. 1, 2호점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한 박스이었는데 그곳을 떠나보내야만 했죠. 이 과정에서 단 한 명이라도 환불 문제를 겪지 않도록 마지막 회원의 만료일을 폐업일로 정했어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제스트가 겪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고 감사하게도 회원분들이 더 많이 아쉬워 해주시면서 위로해주셨어요. 사실 3개 지점을 운영하면서 적자가 심했어요.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고 다른 두 지점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지점을 닫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제가 진짜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더욱더 확실해졌고 이제 더 이상 잃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됐어요.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일단 늘 아껴주시고 코치의 운동 철학을 믿고 따라주셔서 감사드려요. 코치들이 선수로서 활약을 할 때마다 먼저 앞장서서 응원해주셔서 저희 모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이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 좋은 운동 프로그램과 운동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죽을 때까지 크로스핏 제스트를 지키겠다고 회원분들께 다시 한번 약속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전체적으로 대한민국 크로스핏이 힘든 시점이에요. 폐업하는 박스가 늘고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 뚝심 갖고 잘 버티면 다시 좋은 일들이 올 것이라고 믿어요. 다만 가격 경쟁만큼은 피했으면 좋겠어요. 이는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일 수 밖에 없어요. 임시방편으로 가격을 낮추는 것 보다 코치들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좋은 운동 환경을 구축해나가며 우리 스스로 내구성을 키우면 조만간 우리의 노력을 알아줄 것 같아요. 다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Credit
Editor FIFL
Photography CrossFit Zest, Rehband
피플진 FIFLZINE은 FIFL이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각 분야에서 운동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있습니다. 운동이라는 매개체로 서로의 에너지와 일상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건강한 삶을 독려할 수 있는 채널이 되길 바랍니다.